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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민사 박물관에서 개척자의 삶과 애환을 느끼다 본문

* 푸우짱 여행맛집/해피한 가족여행

한국 이민사 박물관에서 개척자의 삶과 애환을 느끼다

필리핀푸우짱 2012. 7.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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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민사 박물관에서 개척자의 삶과 애환을 느끼다

안녕하세요~푸우짱입니다

오늘은 인천 월미도에 위치한 한국 이민사 박물관을 관람하고 포스팅을 해보고자합니다

월미도는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보기위해서 가는 곳이구요 이곳에 이민사 박문관이 있답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2003년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맞아 우리 선조들의 해외에서의 개척자적인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인천광역시 시민들과 해외동포들이 함께 뜻을 모아서 건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사박물관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의 출발지였던 인천에 한국 최초의 이민사박물관을 건립함으로써

100여년의 한인 이민역사를 체계화 할 수 있는 기반이 비로소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넓은 주차장을 가지고 있구요~월미도의 놀이기구가 보입니다

 한국 이민사 박물관 정면모습~

박물관 안내도~전시실은 1층과 2층에 위치하고 있구요

지하에서 특별전시로 '젊은,독일행 비행기에 오르다'가 전시되고 있었답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아직까진 무료관람입니다

 전시관 주변은 월미산과 함께 있어서 가볍게 산책하기도 좋을껏 같네요

 한국 이민사 박물관 입구와 안내데스크의 모습

 한국 이민사 박물관의 건립이념입니다

 한국 이민사 박물관 건립을 위해서 많은 분들이 자료등을 기증해주셨네요!

한국 이민사 박물관 관람은 2층부터 입니다.

이민의 출발지였던 개항 당시의 인천을 소개하고, 우리나라 첫 공식이민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국내정세 및 하와이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이민자들을 싣고 하와이로 떠난 첫 선박인 갤릭호 모형을 통해 당시 이민자들의 길고 험난했던 여정도 생생히 체험해 볼 수 있답니다

 이민역사를 정리한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의 일제점령시기에 하와이로 이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입니다

빨리 국력이 더 강해져야할껏 같네요!

 오래된 우리나라의 옛지도도 보이네요~

 서구문화가 우리나라와 인천에 미친 영향을 알 수 있답니다

개항당시 인천의 지도모형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우리나라 화폐도 전시되어있답니다~

 인천은 예전부터 수출입이 가장 활발한 도시였답니다

생전 처음보는 오래된 물건들..

해열제인 금계랍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권발급등을 했던 유민원에 대한 안내~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에 대한 안내도 있네요

 한국 이민사 박물관은 조금 천천히 관람하면 좋을껏 같아요~

 과거의 여권!신기하죠?

 하와이로 이민할 사람들을 모집한 이민광고랍니다

19세기 후반 우리나라는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혹독한 굶주림에 처해있었구

이런 와중에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쌀과 곡물 약탈로 양곡사정이 최악이었다고 합니다

빈곤이라는 경제적 요인과 여러가지 요인으로 하와이 이민이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하와이는 설탕수요증가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사탕수수농장 일손 충당에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121명이 인천 제물포에서 하와이로 가는 미국 태평양 횡단 기선 갤릭호(S.S Gaelic)에 탑승했엇답니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19명이 탈락, 102명만이 갤릭호(S.S Gaelic)를 타고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

갤릭호의 승선한 102명의 사진과 물품

 이민단의 여정을 알 수 있는 안내도~

 이민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말해주는 증언도 있네요...

 첫 이민선 갤릭호(S.S Gaelic)의 모형~

이동하는 곳에는 각 년도별 이민자수등을 정리해놓았네요

64회에 걸쳐 총 7415명이 이민을 떠났답니다

우리나라에서 하와이로 이민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탕수수농장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 많은 고생을 했으리라 생각이 되네요.

사탕수수농장에서는 십장인‘루나’의 감시를 받았고 뜨거운 햇빛 아래서 힘든 노동도 견뎌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농장에서의 규칙적인 생활과 제도의 압박감이었다네요.

목걸이처럼 걸고 다녔던 방고로 하나의 신분증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번호로 취급을 했었네요 ㅜㅜ

한 달 일을 마치면 목걸이처럼 걸고 다녔던 번호에 따라 현금으로 월급을 받았다고 하구요

1905년까지 어른 남자의 월급은 한 달에 17달러 정도였고, 여자나 소년들은 하루에 50센트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당시에 결혼문제가 이민자들의 정착문제중 가장 큰 문제였다고 하네요

그당시 남자가 여자보다 10배나 많아서 궁여지책으로 마련된것이 사진결혼이라고 합니다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중매쟁이를 통해 약700여 명 정도의 사진신부들이 결혼하기 위해 하와이로 건너갔다.

사진만 보고 결혼을 하다 보니 그들의 평균 나이 차이는 무려 15살이나 되었다.심지어 30살이 넘는 나이차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로서 본격적인 초기 한인 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사진신부들 또한 개척자로서 강인하고 적극적인 삶을 꾸려나갔다고 합니다

처음 하와이로 간 이민자들중 미국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고 우리나라로 돌아온 분들도 있답니다

1920년대에 미국 캘리포니아등지로 많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과거 이민자들의 여러가지 사진들~

실제로 한인들이 사용한 양은 도시락통과 물통도..

 미국 각주별 한인 인구수입니다.캘리포니아가 가장 많네요

 어려움을 이기고 각각의 위치에서 적응해나가는 모습들입니다

 하와이 한인학교를 재현해 놓은 교실과 당시 사용했던 교과서

1층에는 미국이외의 중남미 이민에 대한 전시가 되어있답니다

중남미로 떠난 한인들의 또 다른 삶과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몸을 바쳤던 선열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 보내졌던 이민자들의 가혹한 노동환경과 쿠바, 파라과이 등 기타 남미 국가로 떠난 이민자들의 삶에 대해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 한인사도~

멕시코 에네켄농장의 생활을 보여주는 그림.

멕시코는 단 한차례의 이민으로 끈났지만 4년간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해외각국의 이민자들의 현황을 알려주는 전시관~

 현재 700만의 해외동포가 세계각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재한 외국인 현황~

인천의 사립대학 인하대학교의 설립에 대한 내용도 있네요

'우리나라 공식 이민의 첫 출발지인 인천에는 하와이 이민자들의 조국에 대한 교육적 열망을 담은 인하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인하대학교는 1954년 4월 인하공과대학으로 개교한 뒤 1972년 3월 종합 대학으로 승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인천과 하와이의 첫 자를 따서 인하라는 교명이 만들어졌다.

설립자금에는 하와이 한인기독학원 부지 매각 대금과 정부 지원금, 시민들의 성금 등이 포함되었다.
인하대학교의 설립은 하와이 교포들의 정신적인 귀환이자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염원을 실현한 상징이기도 하다.' 고 합니다

한국 이민사 박물관 지하에서는 특별 전시로 '젊음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다'가 전시중이었답니다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의 이야기라고 하네요

 독일 광산으로 떠난 이야기랍니다

 광부와 간호사들의 독일 적응기입니다

애수에 가득찬 노래가 흘러나오고..왠지 슬픈 느낌을 받습니다

처음 들어본 노래인데....눈물이 흐르려고 하네요^^;;

 독일에서 간호사로서 능력을 인정받는 장한 이야기~

 간호사와 광부의 파독일지입니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많은 분둘이 독일로~

해외동포에게 띄우는 엽서도 있네요

국국장병에게 편지를 쓰듯~미지의 세계에서 알지못하지만 노력중인 우리나라 해외이주민들에게 엽서한장 써보세요^^

월미도에서 우연히 가본 한국 이민사 박물관!

주차장으로 오면서 많은 생각이 드네요~

한국 이민사 박물관을 관람하고 어릴 적에 주변에서 이민가신 분들이 어렴풋이 떠올랍답니다

아르헨티나로 이민간 주변분들이 있었는데...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19시기 우리나라의 힘든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해외이민.

오늘 한국 이민사 박물관을 둘러보니 국력이 강해야한다는 생각이 우선 들더군요

또한 지금 우리나라를 있게한 과거 많은 분들의 노력과 애환을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답니다

월미도에 가면서 한번씩 방문하셔서 좋은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한국 이민사박물관 홈페이지 - http://mkeh.incheon.go.kr/icweb/html/web63/0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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